부동산 일을 시작한지 18년차로서 중개인에게 신탁 등기된 부동산 매물을 의뢰하는 임대인이 간혹 있습니다. 신탁사로부터 임대차 동의서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할때만 접수하여 진행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할때는 진행하지 못한다고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개별등기 된 10세대 빌라 물건을 매수하신 임대인이 대출을 많이 받기 위해서 신탁사를 통한 담볻대출을 받고, 월세로 이자를 감당하고 나머지는 임대수익을 얻기 위해서 부동산에 물건을 내놓았습니다. 동일하게 답변을 드리자, 부동산이 너무 빡빡하다고 하시며 강력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임대인의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경우 많은 피해를 입을 임차인에게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라고, 또는 못 본 척 하는 것은 중개인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익을 위해서 일부 중개사들이 신탁등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보증금 못 돌려 받아도 낙찰될 때까지 수개월 월세 내지 않고 거주하면 보증금만큼은 충분히 보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탁 부동산 현장에서 일부 중개사들이 임차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던지는 "보증금 못 받아도 낙찰될 때까지 월세 안 내고 살면 그게 그거다"라는 논리는 실무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임을 짚고, 법적 근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임차인을 부당이득 반환 소송과 명도 소송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임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1. 공매의 순간, 월세 안내면 그게 그거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는 법률적으로 완전히 틀린 말이며 임차인을 전과자나 신용불량자로 만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조언입니다. 왜냐하면, 신탁 공매의 임차인은 불법 점유자입니다. 일반적으로 근저당권자로 인한 경매와 신탁 공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항력의 유무입니다. 근저당권자가 선순위이고 후순위로 들어간 임차인은 전입과 점유를 했다면 대항요건이 생겨서 최우선변제권이 생깁니다. 그래서 최우선변제액 내에서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탁 공매에서 사전 동의 없이 위탁자인 임대인이 월세 계약을 하고 임차인을 맞았다면 이는 대항요건이 없을 뿐더러, 임차인은 무단 점유자에 불과합니다. 낙찰자가 나타나기 전이라 하더라도 신탁사는 언제든지 임차인에게 부동산 인도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2. 부당이득금 반환의 대상이 될 수 도 !
일부 중개사가 월세 안내고 거주하면 낙찰될 때까지 보증금 정도까지는 보전 받는다고 하는데 부당이득이라는 법적 개념을 간과한 발언입니다. 임차인이 신탁사의 동의 없이 거주하면서 월세를 내지 않는 경우, 신탁사나 추후 낙찰자는 임차인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임차인이 점유한 기간만큼의 임대료 상당액을 산정하여 배상하라고 판결합니다. 보증금 1,000만 원을 못 받았다고 해서 1,000만 원어치 월세를 안 내고 버텼다면, 나중에 신탁사나 낙찰자에게 그 1,000만 원을 고스란히 뱉어내야 합니다. 못 내면 통장 압류와 신용불량 등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졸지에 채권 추심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공매 낙찰자가 소유권을 이전받은 후에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퇴거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반 경매와 달리 신탁 공매는 '인도명령' 제도가 없습니다. 대신 명도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때 낙찰자는 임차인에게 점유이전금지가처분과 함께 임료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됩니다. 특히 낙찰자가 해당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면, 임차인의 명도 거부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 이자까지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실무에서는 실제로 낙찰을 받은 낙찰자가 나타나서 여기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이걸 일반적인 경우로 생각하고 중개한다면 너무 큰 판단 미스입니다. 당장의 중개보수 때문에, 임대인의 회유와 본인의 장담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는건 금물입니다.
3. 공짜 없는 세상, 임차인의 선택은?
보증금을 못 받아도 월세로 퉁치면 된다"는 말은 법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통하지 않는 논리입니다. 법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유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보증금을 지키고 싶다면, 신탁사의 동의가 없는 매물은 아무리 싸고 조건이 좋아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중개사의 무책임한 감언이설에 속아 여러분의 신용과 미래를 도박에 걸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중개사도 눈앞에 달콤한 중개보수 때문에 직업윤리를 저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최근 법의 개정으로 중개사는 등기부등본은 물론이고 신탁원부까지 열람하여 교부하고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사용 수익에 관련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신탁원부에 수탁자인 신탁사 동의없이 임대는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무효라는 것입니다. 중개사는 임차인에게 이를 확인시키고, 임차인은 중개사에게 이를 보여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전세사기로 인해서 임차인의 조심성이 정말 두터워졌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의 악화로 인해서 눈앞의 수익에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중개사와 임차인을 적잖이 만나게 됩니다. 정확한 정보로 정확하게 본인을 지키시길 당부드립니다. 구체적인 상황별 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